입학사정관이 말하는 지원자가 피해야 할 "나쁜 자기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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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면접 당시 만난 학생 하나가 기억에 남네요. 국어국문학과를 희망하는 이 학생은 다른 지원자보다 학업성취도는 우수하지만, 지원학과인 국어국문학과 관련 비교과 활동 실적은 거의 없었어요. 자기소개서에 소개된 내용도 교내 음악 밴드에서 2년 정도 활동한 것 외에는 글쓰기동아리 활동 1년, 교내 글짓기 수상 몇 건이 전부였습니다. 수필을 내거나 소설가로 활동하는 등 화려한 비교과를 지닌 타 지원자들에 비해 조금 초라하다고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친구는 결국 합격점을 얻었습니다. 면접 시 밴드활동에 대한 대답으로 상황을 뒤집은 거죠.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해 작가가 되고 싶은데,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적 감수성이다. 그 예술적 감수성을 음악으로 함양하고 싶었다. 밴드 공연을 하면서 멤버들과 마찰도 있었지만 잘 헤쳐나갔고, 악기를 다루면서 자존감도 회복했다’는 말로 연계성을 보여줬거든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기소개서에서 드러내지 못한 비교과 활동과 전공과의 유기성을 면접에서야 풀어냈다는 거죠. 실제 대입이었다면요? 불합격했을지 모르죠.”


교육기관 자문위원 등을 거쳐 현재 한 대학 입학사정관으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이 학생을 두고두고 회자하는 ‘아쉬운 자기소개서 사례’로 꼽았다. 의미 있는 활동과 전공의 유기적 서술이 이뤄진 경우였지만 이러한 내용이 면접에서야 드러나 자칫 안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경우였다. 그는 “활동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수행했으며, 활동 결과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본인의 관심 분야나 지원학과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명시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다만 이러한 내용이 면접이 아니라 자기소개서에 드러났다면 1단계 서류평가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사정관 B씨도 ‘유기성’이 결여된 자기소개서를 경계했다.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기록을 통해 우수성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 혹은 역량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는 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학생부 상에는 봉사정신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없는데 자기소개서에서 자신의 봉사정신에 대해 강조한다거나 하는 경우죠. 자기소개서에서는 성실성을 말하고 있는데 학생부 출결상황은 그와 반대되는 사항이 있다면 어떻게 판단을 하겠습니까.”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꿈을 키워 온 궤적을 중심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서 학생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는 것이 자기소개서다. 각 문항마다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진솔하게 작성해야 하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이나 세부계획 없이 지원학과 정보를 혼동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활동 내역을 의미 없이 나열하는 등 실수를 저지르는 사례들이 많다. 국내 대학 입학사정관 5인에게 수험생들이 피해야 할 '나쁜 자기소개서‘에 대해 들었다.


◇전공·진로에 대해 고민한 흔적·세부 계획 등 보여야
학과·대학 잘못 적으면 자소서 전체 진정성까지 의심

과학기술특성화대 입학사정관 C씨와 학종 관련 서적을 집필하는 등 자기소개서에 조예 깊은 입학사정관 D씨는 ‘꿈에 대한 서술’에 관해 언급했다.

“학업역량이 상당히 뛰어난 지원자가 ‘뇌 과학자’의 꿈을 갖고 있다고 서술했습니다. 하지만 뇌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사례로 든 실험 내용도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었고요. 우리 학교에 진학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실제로 학교에 대한 이해 없이 홈페이지에 나온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입학사정관 공감대를 얻을 수가 없었죠. 학생부를 들여다보니 괴리성은 극에 달하더군요. 3년 내내 진로희망이 ‘의사’로 적혀있던 겁니다. 뇌 과학자로의 꿈을 엮어낼 수 있는 독서활동이나 교사 의견 또한 찾아볼 수 없어 이 학생은 진솔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죠.”(C 사정관)

D 사정관은 컴퓨터공학과에 지원한 두 지원자 사례를 들었다.

<지원자 1>
평소 간단한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DB의 중요성을 인식했습니다.(중략)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고 DB 분야 최고 권위자인 OOO교수님이 계신 이 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지원하게 됐습니다.(중략) 우리나라 DB 업체는 대부분 중소기업이라 들었습니다. 저는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이러한 Oracle DB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는 회사의 복구부서에서 금융 분야 DB서버의 오류를 최단 시간에 복구시키는 기술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원자 2>
평소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DB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특히 Oracle에 심취했습니다. 요즘 정보보안과 DB전문가가 유망직종으로 부상하면서 더욱 관심이 생기게 돼 지원하게 됐습니다.(중략) DB를 관리하고 개발하는 사람이 바로 DBA입니다. 저는 DBA가 되기 위해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들어가서 전문성을 더 쌓아서 대한민국 DB발전에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D 사정관이 지적하는 경우는 지원자 2의 '전공·진로에 대한 고민과 세부 계획의 결여'에 대한 내용이다. "B는 유망직종이란 사회적 트렌드를 의식하고 지원한 경우죠. 반면, A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노력을 하면서 궁금했던 학문적 내용, 또 대학에 들어와 어떻게 본인의 꿈을 위해 노력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A는 구체적으로 본인이 희망하는 세부적 분야와 미래 직장 부서명까지 언급하며 상세한 진로계획을 제시했지만 B는 장래희망인 DBA를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등 단순 미래를 생각하고 있죠."

지원학과나 대학의 정보를 잘못 기입하는 경우도 사정관들이 꼽는 '최악의 자기소개서'다. 지원하려는 전공이나 대학에 열정을 지니고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학생을 찾고자 하는 입학사정관 입장에서 이는 가장 황당한 사례다. 한 국립대 사정관 E는 "6개 대학에 수시 원서를 넣다보면, 지원학과가 틀린 상태로 제출되는 경우가 있어요. 단순 실수일수도 있지만 학과명이나 정보가 상이할 경우라면 자기소개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진정성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A 사정관은 "타 대학 이름이 발견되거나 지원 대학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내용상 가장 치명적인 오류죠. 'ㅇㅇ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물리교사가 되고 싶다'고 한 지원자의 경우도 문제가 있어요. 우리 학교 물리학과의 경우 사범대학이 아니라서 교원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는데 말이죠. 중등교사가 되려면 일반적으로 사범대학 졸업 후 교사임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숙지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활동사항 늘어놓는 '나열'은 지원자 파악에 한계… 오탈자도 성의 없어 보여

나열식 기재와 오탈자 등도 지원자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B 사정관은 "자기소개서는 학교 교육의 여러 활동들이 지원자에게 미친 영향과 변화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단순 활동 결과의 나열에 그치는 경우는 지원자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내가 어디에 관심이 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드러내야하는 것이 바로 자기소개서"라고 강조했다.

C 사정관은 "많은 지원자들이 사실 위주 나열식 기재를 선호한다. 어느 활동이 더 매력적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어느 하나도 버리기 어려워 모두 채워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고교 활동사항은 이미 학생부에 기재돼 있으니 자소서를 통해 학생부를 통해 볼 수 없는 점을 적어야 한다”며 “특히 활동을 하게 된 동기, 과정, 느끼고 배운 점 등을 적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정관들을ㄴ 지원자가 우리 대학에 들어와 어떤 인재로 성장할 것인지 그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 등을 파악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성이 결여된 경우도 지원자들이 지양해야 할 잘못된 자기소개서다. 기본적인 맞춤법·띄어쓰기 실수 등 오류가 그것”이라며 “이러한 실수는 퇴고 과정도 거치지 않은 정성 없는 자소서라는 인상을 준다. 글자 수가 턱없이 부족해도 성의가 없어 보이거나 급하게 작성됐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귀띔했다.


E 사정관도 "오·탈자 점검은 필수다. 초·중·고교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학생으로서 맞춤법이나 지원 대학명을 틀리는 창피한 실수는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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